19세기 사상이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었다면, 2018년 지금의 한국을 배회하는 녀석은 고도화된 문화 컨텐츠라는 유령일 것이다. 굳이 두 녀석을 비교하는 이유는 그 탄생의 배경이 척박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파급력이나 집중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게감을 가진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타투라는 문화 컨텐츠에 있어 대한민국은 가장 척박한 환경이다. 이 땅에서 타투를 시술하는 것은 현행법에 의한 판례를 기준으로 엄연한 불법이다. 내 몸에 평생 남길 타투를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의사를 찾아가서 받으라는 판례는 문화를 대하는 한국 사법부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민낯이기도 하다. 기원전 함무라비 법전이 울고 웃을 저열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판도 달지 못한 척박한 지하에서 싹 튼 한국의타투 문화가 무서운 유령처럼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타투 컨벤션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지 못할정도다. 더 나아가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타투 장르의 등장과 확장으로 컨벤션 심사위원을 맡을 한국 작업자를 선정하는 것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있다.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타투 스튜디오의 메인 작업자 명단에 KIM, LEE, PARK은 당연히 있어야 할 단어가 되었다. 또, 지난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타투이스트인 Eva Karabudak 외에 수많은 유명 작업자들이 한국 작업자와의 교류를 원하며 서울을 방문한다. 앞으로 수년간의 예약이 끝나 있는 이 작업자들의 타투를 서울에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타투가 불법인 나라에서 행해지는 아이러니한 해프닝이기도 하다.
서두에 우리 타투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은 것은 단순한 공명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더 죄어야 할 이유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함이다.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점점 무거워지는 중량감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약 7년 전, 타투를 해드린 손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20대 후반의 여성분인 그 손님은 건강검진 결과 C형 간염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이 자신이 한 일 중 감염 경로가 될 수 있는 것은 타투 밖에 없는 것 같다며 차분한 어조로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같은 전화를 받는다면 비슷하겠지만, 잘잘못을 떠나 C형 간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앞이 하얗게 변했었다. 실제로는 몇 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 시계는 반나절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다행히도 항상 작업 전에 손님이 보는 앞에서 기계를 소독하고 세팅 한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조금 진정을 할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제작사를 확신할 수없었던 완제품 바늘도 믿지 못해, 프랑스에서 수입한 낱개 바늘을 직접 납땜질하고 소독하여 타투에 사용하고 있었다. 손님께 이 과정을 설명 드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직접 지켜보시는 앞에서 진행되었음을 상기 시켜드린 후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이 사건에서 나를 지켜 준 것은 기계적으로 익힌 위생 교육과 이를 묵묵히 지켜온 직업 윤리 의식이었다. 타투를 작업하면서 위생에 대한 기준을 매번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오히려 점점 느슨해지는 자신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 이때마다 앞서 설명했던 C형 간염의 충격이 나 스스로를 다잡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를 통해 각자가 직업 윤리에 대한 기준을 잘 세우고 있는 것이 결국 나와 내 직업 전체를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 직업을 아끼고 우리 타투씬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 우리 모두가 집단지성을 동원하기 원하는 부분이 바로 이 '타투이스트의 직업 윤리'이다. 직업 윤리가 무너진 직업인은 스스로 대가를 치루거나,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것으로 그 벌을 받아왔음을 우리의 역사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좀 극단적인 예시로 국가가 국가 윤리 의무를 저버린 경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국가 권력이 주권을 지키지 못해 자국의 여성이 외국 군대의 성노예가 되는 것을 보호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치유와 보상이 아니라 '환향년', '양갈보'등의 폄하를 통해 죄책감을 감쇄하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왔다. 일본의 동아시아 전쟁 후 이어진 625한국전쟁에서 일본군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군도 자국의 여성을 성노예로 동원 했었고, 이어진 정권하에서는 외화 벌이를 위한 공창 운영, 기지촌 운영, 국가의 관광 주무 부서를 통해 매춘 관광을 양성하는 것으로 국가가 가져야 할 윤리를 저버렸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88서울올림픽에서 외화 벌이를 위해 국가가 동원/지원한 매춘 여성은 14만명에 육박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지른이 끔직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가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더불어 50% 이상의 남성이 성을 매매하는 독보적 매춘국가로의 등극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뤄야 할 비용과 사회적 충돌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이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 가장 크고 아픈 사례를 언급했지만, 사실 이렇게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번엔 좀 더 가볍게 우리 자신에 대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왜 타투가 불법이 되었는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타투가 이 땅에 뿌리내리던 시기에 타투 소비자는 거의 대부분이 조직폭력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고, 타투는 상대에게 더 큰 위압감을 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도 혐오, 공포 혹은 거친 세계에서 죽지 않고 오래 살게 해달라는 장수 부귀영화에 대한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조직폭력배의 검거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메타포를 전달하는 방법은 타투가 가득한 거대한 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00년대 어마어마한 양의 조폭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는 주인공이 목욕탕에 앉아있는 씬에서 어떤 타투를 보여주느냐가 아트팀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조직폭력배라는 단어와 동일한 상징성을 가진 타투라는 문화가 대중에게 예쁜 자식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못된 자식처럼 보였을까? 그 결론은 타투가 불법이며 의료행위라는 말도 안되는 판례의 바탕에는 이를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존재 했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방금 언급했던 조직폭력배의 타투라는 이레즈미도 전세계를 돌며 이미 충분한 예술적 가치를 획득했지만, 정작 일본과 한국에선 아직도 편견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가 보여준 도덕적 해이가 예상치 못한 한국의 병폐를 만들고 그 사회적 비용과 충돌을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올바른 타투 소비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문화의 흐름에 휩쓸렸던 대가가 불법의료시술자라는 지금의 신분인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직업윤리에 대한 해이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며, 지금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타투이스트가 지켜야 할 직업윤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결론을 내려줄 정도의 지혜를 가지지 못한 것을 잘 알기에, 현재 시점에서 내가 가진 직업 윤리의 기준을 짧게 공유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내 기준이 옳은 것일 수도 있고, 잘못 된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작업자로 늙어가면서 변할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가치이기에 함께 공유하기를 원한다.
타투이스트로써 내가 가진 직업 윤리의 큰 주제는 위생도 서비스정신도 아니다.
바로 "무엇을 그리느냐?"이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손님에게 생명을 주는 그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은 보는 사람과 영감을 공유하게 된다. 나는 내 타투를 통해 모두가 좋은 영감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모나리자를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내 타투를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 타투를 보고 아름다움이나 좋은 영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 직업 윤리의 기준이다. 그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내 타투를 보고 혐오나 좋지 못한 영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타투가 줄 수 있는 가장 나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나쁜'을 넘어 '생명과 반대 되는 영감'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지 반드시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실제로 타투 소비자의 삶을 삼키는 나쁜 직업관의 결과물임에 틀림 없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설득력과 표현력을 가진 그림을 누군가의 가죽에 영원히 남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위생과 같은 단순 규약은 직업 윤리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귀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고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직업윤리가 아닐까? 또한 이런 좋은 영감의 전이는 자연스러운 타투 합법화의 결론을 가져올 것이다. 오래 전의 거친 타투 문화가 시나브로 가져온 '타투는 의료'라는 덜 떨어진 결론처럼, 새로운 직업윤리 위에서 정돈된 타투 문화가 자연스러운 합법화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이라 기대하고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각자가 우리가 가져야 할 직업 윤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잠깐의 시간을 할애하여 정리할 기회를 가진다면, 또 그 결론이 나와 정반대 되는 것일지라도, 어설픈 필력으로 조악한 글을 쓴 내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노력과 시간들이 모여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집단 지성의 원리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큰 흐름이 시작되어 이 시대 위를 배회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Write by 타투이스트 도이
무엇을 그리고 있습니까?
타투이스트의 직업윤리
19세기 사상이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었다면, 2018년 지금의 한국을 배회하는 녀석은 고도화된 문화 컨텐츠라는 유령일 것이다. 굳이 두 녀석을 비교하는 이유는 그 탄생의 배경이 척박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파급력이나 집중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게감을 가진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타투라는 문화 컨텐츠에 있어 대한민국은 가장 척박한 환경이다. 이 땅에서 타투를 시술하는 것은 현행법에 의한 판례를 기준으로 엄연한 불법이다. 내 몸에 평생 남길 타투를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의사를 찾아가서 받으라는 판례는 문화를 대하는 한국 사법부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민낯이기도 하다. 기원전 함무라비 법전이 울고 웃을 저열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판도 달지 못한 척박한 지하에서 싹 튼 한국의타투 문화가 무서운 유령처럼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타투 컨벤션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지 못할정도다. 더 나아가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타투 장르의 등장과 확장으로 컨벤션 심사위원을 맡을 한국 작업자를 선정하는 것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있다.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타투 스튜디오의 메인 작업자 명단에 KIM, LEE, PARK은 당연히 있어야 할 단어가 되었다. 또, 지난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타투이스트인 Eva Karabudak 외에 수많은 유명 작업자들이 한국 작업자와의 교류를 원하며 서울을 방문한다. 앞으로 수년간의 예약이 끝나 있는 이 작업자들의 타투를 서울에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타투가 불법인 나라에서 행해지는 아이러니한 해프닝이기도 하다.
서두에 우리 타투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은 것은 단순한 공명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더 죄어야 할 이유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함이다.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점점 무거워지는 중량감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약 7년 전, 타투를 해드린 손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20대 후반의 여성분인 그 손님은 건강검진 결과 C형 간염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이 자신이 한 일 중 감염 경로가 될 수 있는 것은 타투 밖에 없는 것 같다며 차분한 어조로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같은 전화를 받는다면 비슷하겠지만, 잘잘못을 떠나 C형 간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앞이 하얗게 변했었다. 실제로는 몇 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 시계는 반나절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다행히도 항상 작업 전에 손님이 보는 앞에서 기계를 소독하고 세팅 한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조금 진정을 할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제작사를 확신할 수없었던 완제품 바늘도 믿지 못해, 프랑스에서 수입한 낱개 바늘을 직접 납땜질하고 소독하여 타투에 사용하고 있었다. 손님께 이 과정을 설명 드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직접 지켜보시는 앞에서 진행되었음을 상기 시켜드린 후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이 사건에서 나를 지켜 준 것은 기계적으로 익힌 위생 교육과 이를 묵묵히 지켜온 직업 윤리 의식이었다. 타투를 작업하면서 위생에 대한 기준을 매번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오히려 점점 느슨해지는 자신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 이때마다 앞서 설명했던 C형 간염의 충격이 나 스스로를 다잡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를 통해 각자가 직업 윤리에 대한 기준을 잘 세우고 있는 것이 결국 나와 내 직업 전체를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 직업을 아끼고 우리 타투씬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 우리 모두가 집단지성을 동원하기 원하는 부분이 바로 이 '타투이스트의 직업 윤리'이다. 직업 윤리가 무너진 직업인은 스스로 대가를 치루거나,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것으로 그 벌을 받아왔음을 우리의 역사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좀 극단적인 예시로 국가가 국가 윤리 의무를 저버린 경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국가 권력이 주권을 지키지 못해 자국의 여성이 외국 군대의 성노예가 되는 것을 보호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치유와 보상이 아니라 '환향년', '양갈보'등의 폄하를 통해 죄책감을 감쇄하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왔다. 일본의 동아시아 전쟁 후 이어진 625한국전쟁에서 일본군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군도 자국의 여성을 성노예로 동원 했었고, 이어진 정권하에서는 외화 벌이를 위한 공창 운영, 기지촌 운영, 국가의 관광 주무 부서를 통해 매춘 관광을 양성하는 것으로 국가가 가져야 할 윤리를 저버렸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88서울올림픽에서 외화 벌이를 위해 국가가 동원/지원한 매춘 여성은 14만명에 육박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지른이 끔직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가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더불어 50% 이상의 남성이 성을 매매하는 독보적 매춘국가로의 등극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뤄야 할 비용과 사회적 충돌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이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 가장 크고 아픈 사례를 언급했지만, 사실 이렇게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번엔 좀 더 가볍게 우리 자신에 대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왜 타투가 불법이 되었는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타투가 이 땅에 뿌리내리던 시기에 타투 소비자는 거의 대부분이 조직폭력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고, 타투는 상대에게 더 큰 위압감을 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도 혐오, 공포 혹은 거친 세계에서 죽지 않고 오래 살게 해달라는 장수 부귀영화에 대한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조직폭력배의 검거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메타포를 전달하는 방법은 타투가 가득한 거대한 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00년대 어마어마한 양의 조폭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는 주인공이 목욕탕에 앉아있는 씬에서 어떤 타투를 보여주느냐가 아트팀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조직폭력배라는 단어와 동일한 상징성을 가진 타투라는 문화가 대중에게 예쁜 자식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못된 자식처럼 보였을까? 그 결론은 타투가 불법이며 의료행위라는 말도 안되는 판례의 바탕에는 이를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존재 했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방금 언급했던 조직폭력배의 타투라는 이레즈미도 전세계를 돌며 이미 충분한 예술적 가치를 획득했지만, 정작 일본과 한국에선 아직도 편견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가 보여준 도덕적 해이가 예상치 못한 한국의 병폐를 만들고 그 사회적 비용과 충돌을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올바른 타투 소비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문화의 흐름에 휩쓸렸던 대가가 불법의료시술자라는 지금의 신분인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직업윤리에 대한 해이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며, 지금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타투이스트가 지켜야 할 직업윤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결론을 내려줄 정도의 지혜를 가지지 못한 것을 잘 알기에, 현재 시점에서 내가 가진 직업 윤리의 기준을 짧게 공유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내 기준이 옳은 것일 수도 있고, 잘못 된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작업자로 늙어가면서 변할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가치이기에 함께 공유하기를 원한다.
타투이스트로써 내가 가진 직업 윤리의 큰 주제는 위생도 서비스정신도 아니다.
바로 "무엇을 그리느냐?"이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손님에게 생명을 주는 그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은 보는 사람과 영감을 공유하게 된다. 나는 내 타투를 통해 모두가 좋은 영감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모나리자를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내 타투를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 타투를 보고 아름다움이나 좋은 영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 직업 윤리의 기준이다. 그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내 타투를 보고 혐오나 좋지 못한 영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타투가 줄 수 있는 가장 나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나쁜'을 넘어 '생명과 반대 되는 영감'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지 반드시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실제로 타투 소비자의 삶을 삼키는 나쁜 직업관의 결과물임에 틀림 없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설득력과 표현력을 가진 그림을 누군가의 가죽에 영원히 남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위생과 같은 단순 규약은 직업 윤리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귀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고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직업윤리가 아닐까? 또한 이런 좋은 영감의 전이는 자연스러운 타투 합법화의 결론을 가져올 것이다. 오래 전의 거친 타투 문화가 시나브로 가져온 '타투는 의료'라는 덜 떨어진 결론처럼, 새로운 직업윤리 위에서 정돈된 타투 문화가 자연스러운 합법화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이라 기대하고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각자가 우리가 가져야 할 직업 윤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잠깐의 시간을 할애하여 정리할 기회를 가진다면, 또 그 결론이 나와 정반대 되는 것일지라도, 어설픈 필력으로 조악한 글을 쓴 내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노력과 시간들이 모여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집단 지성의 원리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큰 흐름이 시작되어 이 시대 위를 배회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Write by 타투이스트 도이
- TATTOO TRIBAL VOL.4